아드라 코리아(ADRA Korea)
By Kuk Heon Lee
Kuk Heon Lee graduated from Sahmyook University (B.A.), Newbold College (M.A.), and Sahmyook University (Ph.D.). From 1990 to 2009, he served as a pastor at Korean Union Conference. In 2010, he joined Sahmyook University as a lecturer and professor at the Theology Department. His research and teaching interests are in Church History. He wrote several books and published several papers on the subject. Currently, he is also the Dean of Planning at Sahmyook University.
First Published: March 7, 2021
아드라 코리아는 1995년에 국내외 개발 및 구호 활동을 전개하기 위해 아드라 인터내셔널의 한국지부로 설립되었다. 특히 아드라 코리아는 “삼육국제개발구호기구”라는 고유 명칭으로 한국 정부에 사단법인으로 등록을 받아 운영하고 있다.1 본사는 서울에 있고, 이사는 6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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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
한국 재림교회의 국내 복지사업은 한국전쟁 직후인 195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재림교회는 전쟁으로 고통받고 있던 이웃들을 돕기 위해 한국연합회 산하에 “구제위원회”를 조직했다. 1956년에 대총회는 재림교회 구호봉사회를 조직하였다.2 이에 따라 한국연합회는 “구제위원회”를 “구호봉사회”로 재조직하고 한국연합회장을 구호봉사회장으로 겸임하게 했다.
1958년 8월 31일, 한국연합회는 보건사회부에 한국재림교회 구호봉사회를 등록하고,3 “한미민간구호협정”에 따라 설립된 10대 구호 기구 중 하나로 인정을 받았다.4 구호봉사회는 미국의 여러 구호 기관과 미국 재림교회로부터 구호물자를 지원받아 이웃들에게 제공하는 등 구제 사업에 최선을 다했다. 특히 홍수 및 태풍 피해자에 대한 구호활동과 고아원, 보육원 등의 지원도 전개하였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63년에 한국연합회장이자 구호봉사회장으로 수고하던 윌리엄스(C. A. Williams) 목사는 대한민국 대통령으로부터 공익 훈장을 받았다.5
1966년까지 한국 재림교회 구호봉사회는 보건시설 19곳, 학교 56곳, 정착촌 9곳, 고아원 139곳 등 163개 구호시설에 있는 2만여 명을 대상으로 구호활동을 벌였다.6 그러나 1965년에 이르러 구호봉사 사업은 급격히 축소되었는데, 그 이유는 한국 정부가 대외민간호보단체법(1963년 12월 7일)을 제정했기 때문이었다.7 이 법에 따라서 한국 재림교회 구호봉사회는 오직 대총회로부터만 구호물자를 공급받아 제한적으로 구호활동을 할 수 있었다.
1973년, 대총회는 재림교회 세계봉사회를 조직하여 구호 봉사 활동을 확장하였다.8 이러한 변화와 더불어 구호봉사 한국연합회의 조직에서 분리되어, 재림교회 세계봉사회의 한국 지부로 활동하게 되었다. 따라서 구호봉사부장은 한국연합회가 아닌 대총회에서 임명되었다. 이후 한국재림교회 구호봉사회는 대총회의 구호 물자와 주한 미군의 잉여 물자를 중심으로 한국에서 구호활동을 벌여 왔다. 특히 과거와 같이 음식이나 의복을 제공하는 대신에 재활, 기술 교육, 의료서비스 등의 활동으로 축소되었다.9
구호 활동에 주력하던 재림교회 세계봉사회는 구호 활동을 넘어서 사회 발전을 추구하는 더 큰 조직으로 발전했다. 따라서 1983년에 대총회는 세계봉사회를 재림교회 구호개발기구(ADRA)로 개편하였다.10 이에 한국 재림교회 구호봉사회는 아드라 코리아로 명칭을 변경하고 기존의 사업을 추진하였다. 그 당시에 구호봉사부장은 루이스 앤더슨(Lewis O. Anderson, Jr.)이었다.11
1983년에 한국연합회는 대총회로부터 자양 연합회로 인정을 받아 자양력을 갖춘 조직으로 승격되었다.12 이후로 한국연합회는 해외로부터 원조를 받던 기관에서 어려운 나라들을 돕는 기관으로 발전하였다. 따라서 구호봉사 활동의 범위는 국내를 넘어서 해외로 확대되었다. 이러한 변화 이외에 한국연합회는 아드라 코리아를 법인화하는 작업을 추진하여 그것을 삼육국제구호개발기구(한국 정부에 등록된 명칭임)로 재조직하였다. 아드라 코리아의 책임자였던 헤르만 몽고메리(Herman Montgomery)가 1992년에 미국으로 돌아가게 되자, 한국연합회는 구현서 목사를 구호봉사부장으로 임명하고 아드라 코리아의 법인화를 추진하였다.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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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라 코리아의 역사
삼육국제개발구호기구(아드라 코리아)가 정부로부터 사단법인으로 승인을 받은 것은 1995년 4월 12일이었다. 이에 따라 법인화된 아드라 코리아가 1995년 공식 출범했다. 1995년 5월 10일에 아드라 코리아의 출범을 기념하는 행사가 한국연합회 강당에서 개최되었다. 이 행사에는 아드라 회장인 랄프 왓츠(Ralph S. Watts), 재정담당 부회장인 게이너(R. I. Gainer), 아태지회장인 전병덕 등의 세계 교회 지도자들이 참여하였다.14 이 창립 총회를 통해서 한국재림교회는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한 국내외 개발 및 구호사업을 추진하는 220개 아드라 지부 중 하나로 참여하였다.
아드라 코리아가 삼육국제개발구호기구로 공식 출범하면서, 1955년부터 정부에 등록된 한국연합회 구호봉사회의 역할은 유명무실해졌다. 따라서 1998년 6월 26일, 한국연합회 구호봉사회는 정부로부터 등록을 철회하였다. 또한 구호봉사부와 교회선교부에 의해 추진되었던 구호봉사 프로젝트를 삼육국제개발구호기구(아드라 코리아)로 통합하기 위하여 조직을 개편하였다.15
아드라 코리아가 법인으로 조직한 첫 해에 아시아 국가들에서 많은 재난이 발생했다. 이에 아드라 코리아는 일본, 캄보디아, 미얀마를 포함해 여러 아시아권 국가들에서 재난을 지원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일본 고베 지진 피해 복구를 위해 2만 달러, 캄보디아 난민 구호를 위해 5천 달러, 사할린 지진 복구비로 1만 5천100달러, 한국의 삼풍백화점 붕괴 복구를 위해 2천 345달러, 미얀마 의료 지원에 5천 569달러 등 총 4만 8천14달러의 구호 자금이 지원되었다. 게다가 아드라 코리아는 분야 (20만 달러)와 의약품 및 의료장비 (50만 달러)를 제공하기 위해 북한의료협회와 협력 협정을 체결하기도 했다.16
1997년에는 북한 주민들이 대규모 홍수로 피해를 입었다. 이에 아드라 코리아는 중국 단동 지역에서 6천 달러 분량의 국수를 생산하여 자연재해로 피해를 입은 북한 전역에 지원했다. 1998년에는 한국에 태풍으로 인한 많은 피해가 있었고, 아드라 코리아는 홍수 피해자들을 돕기 위해 10만 달러 이상의 재난구호기금을 모금했다. 1999년, 발칸반도의 코소보 위기 이후, 유엔은 아드라 인터내셔널을 코소보 난민들을 지원하기 위한 공식 구호 기구로 지정했다. 그 당시 아드라 인터내셔널은 알바니아와 마케도니아의 9개 지역에서 구호 활동을 벌였다. 아드라 코리아도 6만5천 달러 상당의 구호기금을 그곳에 지원했다. 한편, 아드라 코리아는 2000년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대만의 재림교회 대학을 복구하기 위해 71만5천 달러를 지원했다.17
21세기의 시작에, 아드라 코리아의 활동 중 가장 주목할만한 것은 북한의 어린이들을 돕기 위한 빵 공장 건설이었다. 스위스는 북한 정부의 요청에 따라 이 프로젝트를 담당했다. 아드라 코리아는 2002년 8월, 평양에 빵 공장을 짓고 하루 5만 개의 빵을 생산하여 평양과 사리원 등지의 95개 고아원과 유치원에 빵을 공급하는 등 적극적으로 북한 지원 사업을 전개하였다. 이 프로젝트는 연간 120만 달러의 제작비가 드는 대규모 프로젝트로 아드라 스위스와 아드라 코리아의 협력 프로젝트로 전개되었다.18
아드라 코리아는 1999년 4월에 한국연합회 구내에 구호물자의 기부를 촉진하기 위한 “나눔의 집”을 열었다. 나눔의 집은 2000년부터 2004년까지 약 22만 점의 물품을 불우 이웃들에게 전달했으며, 이들을 돕기 위해 9만여 달러의 현금과 540여만 점의 물품을 기증하였다. 나눔의 집은 2004년에 예신 패션㈜로부터 450만 달러 상당의 의료를 기증받아 북한의 용천 지역 주민들에게 나눠주었고, 삼육두유 5만 개도 제공했다. 또한 아드라 코리아는 북한 용천병원 건립을 지원하기 위한 자선음악회를 개최하고 국내 80여 개 민간 기구와 공동으로 대북지원을 위한 컨퍼런스를 열기도 했다.19
2007년 1월, 신원식 목사가 아드라 코리아의 부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그해 4월에 긴급재난지원체계를 구축하고 “재난지원물류센터”를 설립해 재난 발생 시 초기 구호서비스에 즉시 기여할 수 있게 했다. 또한 재난 지원활동에 참여할 활동가를 모집하여 활동가 네트워크 구축을 추진하였다.20 아드라 코리아는 2005년 현금관리서비스(CMS)를 통해 모금 사업을 시작해, 2007년 2천여 명의 후원자를 확보했다. 2007년 6웛부터, 그 프로젝트는 5개 지역 합회들의 지원으로 더욱 확대되었다.
2007년 12월, 서해 바다에서 유조선이 침몰하여 엄청난 양의 기름이 바다로 유출되는 환경 재앙을 일으켰다.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환경을 지키기 위해 바다와 해안을 오염시킨 기름을 제거하기 위해 활동하였다. 아드라 코리아는 2008년 2월 24일까지 76일 동안 약 2만 8천명의 자원봉사자들에게 무료 급식을 제공했다. 한편, 한국연합회는 2008년 정부에 등록된 공식 명칭을 삼육국제구호개발기구에서 아드라 코리아로 완전히 변경하였다.21
아드라 코리아는 2007년 9월부터 매주 토요일 노숙자들을 위한 수프 키친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27개 교회, 삼육식품, 그리고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약 100-200명의 노숙자들에게 음식을 제공하기 위해 이 행사를 지원하고 있다. 수프 키친은 종각역 6번 게이트 서린 공원에서 열린다. 아드라 코리아는 서울시가 지원하는 재활 프로그램도 시행하고 있다.
2009년부터는 “사랑의 집 짓기” 프로젝트, “후원 아동협회 프로젝트,” “해외봉사 프로젝트” 등이 개발되어 추진되었다. “사랑의 집 짓기” 사업의 경우, 2017년까지 총 13채의 주책이 지어져 취약 계층에게 새 주택을 공급하였다.22 “1대 1 아동 지원 프로젝트”는 2017년까지 7개국에서 650명의 어린이들을 후원하는 활동이 전개되었다.23 “해외 봉사 프로젝트”의 경우, 2009년에 방글라데시와 캄보디아에 4명의 청소년 자원봉사자를 파견했고,24 그 이후로 많은 자연봉사자들과 활동 팀들을 아시아 개발도상국가에 보냈다.
아드라 코리아는 1995년부터 25년간 국제개발구호사업, 국내외 긴급지원사업, 해외번곤아동결연사업, 코이카 인턴십사업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해왔다. 2020년에 아드라 코리아는 국내 복지사업에 약 8만740달러, 해외 개발 및 구호사업에 약 22만 3천달러, 일대일 아동지원사업에 약 29만8천달러를 지출했다.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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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할과 사명
아드라 인터내셔널의 한국 지부인 아드라 코리아는 한국연합회의 지원 아래 개발 및 구호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아드라 코리아 본부는 한국연합회 본부 내에 위치해 있으며, 회원 대부분이 한국 재림교회 신도들이다. 또한 한국연합회 보건복지부는 아드라 코리아 부장의 책임 아래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아드라 코리아는 한국 재림교회의 핵심 복지선교의 중심으로서 위상을 갖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드라 코리아는 민족적, 국가적, 종교적 환경을 불문하고 모든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아드라 인터내셔널의 정신에 따라 인도주의적 차원의 개발 및 구호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아드라 코리아는 1995년에 한국 정부로부터 비정부민간기구로 공식 승인되었다.
아드라 코리아는 한국 정부뿐만 아니라 기업과 개인들의 후원으로 국내와 해외에서 다양한 개발 및 구호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구호 서비스의 결과로, 아드라 코리아는 2020년 “한국 글로벌 파워브랜드 어워드”(GPBA)를 수상했다.26 이 상은 각 분야에서 국가 발전에 기여한 단체에게 수여되며, 아드라 코리아는 개발과 구호 활동에 기여한 공로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로부터 이 브랜드 대상에 선정되었다. 이번 수상 결과는 아드라 코리아가 한국 사회 내에서 정부와 시민단체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내외적으로도 확실한 구호단체로 인정받고 있음을 확신시켜 준다. 아드라 코리아는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포스트 코비드 19 시대에도 활발한 개발 및 구호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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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자 명단
구제위원회:
오영섭 (1952-1956), C. H. 데이비스(1957-1958)
구호봉사회:
C. H. 데이비스(1958-1959); 김덕신(1960-1962); C. A. 윌리엄스(1963-1965); 원영선(1965-1967); W. L. 윌콕스(1968-1971); 제리 위글(1972-1975); D. C. 케이트, Jr.(1976-1979); 로이 로버츠(1979-1982); 알프레드 버딕(1982-1983); 루이스 올리버 앤더슨, Jr.(1983-1986); 헤르만 몽고메리(1986-1992); 구현서(1992-1995)
아드라 코리아:
구현서91995-2006); 신원식92007-2015)임종민(2016-2020); 김익현(2021- )
Sources
「아드라 코리아 뉴스레터」. No. 3. 2020년 10월호.
「교회지남」. 1960년 2월호; 1963년 10월호; 1983년 12월호; 1995년 7월호.
「재림마을 뉴스센터」. 2007년 4월 6일자; 2008년 3월 17일자; 2010년 2월 18일자; 2017년 3월 13일자; 2018년 2월 18일자; 2020년 12월 14일자.
이국헌. 『한국 재림교회 구호봉사사업사』. 서울: 삼영출판사, 2009.
이영린. 『한국 재림교회사 연구』. 서울: 선명문화사, 1968.
『한국연합회 제27차 총회의사록』. 서울: 한국연합회, 1983.
『한국연합회 제30차 총회의사록』. 서울: 한국연합회, 1995.
『한국연합회 제31차 총회의사록』. 서울: 한국연합회, 2000.
『한국연합회 제32차 총회의사록』. 서울: 한국연합회, 2004.
Recommissioning of diplomatic data for the Republic of Korea: 1949-1959. Seoul: Ministry of Foreign Affairs and Trade, 2010.
Seventh-day Adventist Yearbook, 1973-74. Washington, DC: Review and Herald Publishing Association, 1973.
Seventh-day Adventist Yearbook, 1984. Washington, DC: General Conference of SDA, 1984.
Seventh-day Adventist Yearbook, 1985. Washington, DC: General Conference of SDA, 1985.
Seventh-day Adventist Yearbook 2020. Nampa, ID: Pacific Press Publishing Association, 2020.
Yearbook of the Seventh-day Adventist Denomination, 1957. Washington, DC: Review and Herald Publishing Association, 1957.
Notes
- 한국연합회 제30회 총회의사록』 (서울: 한국연합회, 1995), 153.↩
- Seventh-day Adventist Yearbook (Washington, D.C.: Review and Herald Publishing Association, 1957), 19.↩
- 「교회지남」, 1960년 2월호, 32. 이영린, 한국 『재림교회사 연구』(서울: 선명문화사, 1968), 213.↩
- 한미민간구호협정은 미간 구호활동을 위해 1955년 4월에 남한과 미국 사이에 체결한 협정으로, 미국의 공인 민간 비영리 구호단체나 부흥 단체가 제공하는 물자에 대한 협정이다. Recommissioning of diplomatic data for the Republic of Korea: 1949-1959 (Seoul: Ministry of Foreign Affairs and Trade, 2010). https://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75879, accessed on June 7, 2021).↩
- 「교회지남」, 1963년 10월호, 12.↩
- 이영린, 214.↩
- 이국헌, 『한국재림교회 구호봉사사업사』 (서울: 삼영출판사, 2009), 84↩
- Seventh-day Adventist Yearbook (1973-74), 23.↩
- 『한국연합회 제27회 총회의사록』 (서울: 한국연합회, 1983). 이국헌, 87.↩
- Seventh-day Adventist Yearbook (1984), 21.↩
- Seventh-day Adventist Yearbook (1985), 138.↩
- 유형환, “어찌 보답할꼬?,” 「교회지남」, 1983년 1월호, 1.↩
- 이국헌, 186, 187.↩
- 손윤호, “아드라 코리아의 정부 승인 기념행사가 개최되다,” 「교회지남」, 1995년 7월호, 25.↩
- 『한국연합회 제31회 총회의사록』 (서울: 한국연합회, 2000). 1-67, 1-102.↩
- 『한국연합회 제30회 총회의사록』 (서울: 한국연합회, 1995). 154.↩
- 『한국연합회 제31회 총회의사록』 (서울: 한국연합회, 2000). 1-67.↩
- 「아드라 코리아 뉴스레터」, No. 3 (2020년 12월호), 1, 3.↩
- 『한국연합회 제32회 총회의사록』 (서울: 한국연합회, 2004).↩
- 「재림마을 뉴스센터」, 2007년 4월 6일자. https://www.adventist.or.kr/app/view.php?id=News&page=34&sn1=&divpage=1&sn=off&ss=on&sc=on&keyword=%BE%C6%B5%E5%B6%F3&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3312.↩
- 「재림마을 뉴스센터」, 2008년 3월 17일자. https://www.adventist.or.kr/app/view.php?id=News&page=32&sn1=&divpage=1&sn=off&ss=on&sc=on&keyword=%BE%C6%B5%E5%B6%F3&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3702.↩
- 「재림마을 뉴스센터」, 2017년 3월 13일자. https://www.adventist.or.kr/app/view.php?id=News&page=1&sn1=&divpage=1&sn=off&ss=on&sc=on&keyword=%BB%E7%B6%FB%C0%C7%20%C1%FD%C1%FE%B1%E2&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7960.↩
- 「재림마을 뉴스센터」, 2018년 2월 18일자. https://www.adventist.or.kr/app/view.php?id=News&page=1&sn1=&divpage=1&sn=off&ss=on&sc=on&keyword=%BA%F3%B0%EF%BE%C6%B5%BF&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8477.↩
- 「재림마을 뉴스센터」, 2010년 2월 18일자. https://www.adventist.or.kr/app/view.php?id=News&page=1&sn1=&divpage=1&sn=off&ss=on&sc=on&keyword=%C7%D8%BF%DC%20%C0%DA%BF%F8%BA%C0%BB%E7%C0%DA&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4627.↩
- https://www.adra.or.kr:50007/load.asp?subPage=241_2020.↩
- 「재림마을 뉴스센터」, 2020년 12월 14일자. https://www.adventist.or.kr/app/view.php?id=News&page=2&sn1=&divpage=1&sn=off&ss=on&sc=on&keyword=%BE%C6%B5%E5%B6%F3&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0278.↩